타오르던 계절들이 지나간 자리엔 재가 남았다. 이름 없는 주인공에게 건넨, 나의 재.

뮤지션 jihon 정규 1집 · 2026. 10. 23


앨범 소개

앨범의 제목 'Ashes'는 무언가가 타고 남은 잿더미를 뜻한다. 한때 뜨겁게 타올랐던 열정과 믿음,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낸 상실, 차가운 방바닥에서 흘린 눈물. 불길 같았던 감정들은 시간이 흐르며 사그라들었고, 그 자리에는 아직 온기가 다 가시지 않은 재가 남았다.

jihon은 2021년부터 2026년까지 자신이 지나온 한 시절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다만 그 시간을 직접 이야기하는 대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기로 했다. 이름도, 대사도 없는 가상의 주인공을 만들고, 자신이 겪은 사건과 감정을 그 인물에게 일어나는 장면들로 재구성했다. 그리고 그 장면 하나하나에 영화 음악을 입히듯 곡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Ashes'는 존재하지 않는 한 이야기의 사운드트랙이 되었다. 앨범은 겨울, 여름, 늦가을, 세 계절을 따라 흐른다.


추천의 글

글 · 뮤지션 jampad ('Ashes' 믹싱 및 마스터링)

재가 남았다는 것은 한때 존재했다는 의미이다. 원래는 햇빛을 반사하며 찬란한 자태를 뽐냈을지도, 혹은 은은한 반사광 속에서 유유히 존재했을지도. 그리고 공백이 생겼다는 것은, 새로운 싹이 자라날 수 있는 세상이 생겼다는 것. 어떤 음악은 음악이 없는 곳에서 비로소 맺혀 자라난다. jihon의 음악이 그렇다.

어린 풀이 마른 장작으로 변해가는 순간, 섣부르게 아무것도 남지 않으리라는 짐작도 했었다. 매 순간 무너질 것 같은 때에도 잔인하게 비추어주는 것이 청춘이라는 것이니깐. 높은 해상도는 홀로 토해내는 수분까지 어쩌면 예전에 섭취했을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 너무 자세히 보여준다. 이 앨범의 주인공은 오히려 불이 지나간 자리를 회고하고, 기억들을 되먹고, 잃었던 것들과 남아있는 미련들이 금형을 짜 올려 그의 감각을 지독할 만큼 깊게 느끼게 해준다.

만약에, 그랬다면, 다시 생각해보면. 어쩌면. 돌아간다면.

깊고 세밀하게 조형된 거푸집에서 음악으로 재조합된 그의 다른 세계선은. 그야말로 어쩌면 오랫동안 그를 지켜보던 내가 가장 바라던 세상일지도 모른다.

이제 그의 음악은 많이 비어있다. 이는 그가 떠나보낼 준비를 하여 자신을 속박하던 지푸라기 더미를 물에 띄우기 위한 공기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던져진 지푸라기는 생전에 머금었던 물이 아닐지언정 가득히 적셔질 수 있는 수분에 그저 감사하며 떠내려간다. 그리고 그 지푸라기 더미는 우리에겐 앨범이라는 형태로 관측된다.

필자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All that is gold does not glitter 황금이라고 다 반짝이진 않으며

Not all those who wander are lost 방랑하는 자라고 다 길 잃은 것은 아니다.

다른 평행우주에선 그의 앨범은 이렇게도 사람에게 시간이 만드는 조형을 느끼게 할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은 이 앨범을 제대로 들어본 이에게 비로소 느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